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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2020호외-7 호 우리는 누군가의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

  • 작성일 20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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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851
윤소영

등교를 할 때 경기도에서부터 서울까지 왕복하는 502번 버스를 이용한다. 502번은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별도로 휠체어 석이 마련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 휠체어가 고정된 것을 본 적은 단 한 번뿐이었다. 기사님께서는 휠체어를 버스에 올리기 위해 버스 뒷문의 발판을 아래로 내리셨고,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휠체어를 직접 좌석에 고정시키셨다. 승객이 어디까지 가는지 물으시고는 직접 버스 카드까지 찍어주셨다. 그리고 다시 내렸던 발판을 올리고 출발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아마도 3분 남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부끄럽게도 ‘아, 나 급한데.’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 이기적이고 부끄러운 생각이었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단지 얼른 출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3분이었겠지만,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그들은 원하는 장소에 가기 위해 3분 이상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 분은 ‘인덕원역’이라는 곳에 가고자 하셨는데, 그 버스정류장에는 인덕원역에 갈 수 있는 6개의 버스가 있지만, 그 중 저상버스는 단 두 종류뿐이다. 그 분은 인덕원에 갈 수 있는 세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낼 수밖에 없었고, 502번이 도착했을 때야 비로소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는 그저 어느 일상의 해프닝정도로 지나갈 일이지만, 그 분에게는 매일 같이 반복해야 하는 일상이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유 없는 눈총을 보내기도 한다. 그것이 악의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몇 년 전, 강서구에서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 특수 아동의 보호자들은 이들 앞에 무릎 꿇고 특수학교 설립에 대해 눈물로 호소했지만, 오히려 반대 시위자들은 다시 보호자들 앞에 무릎 꿇고 강경한 입장을 내보였다. 특수학교가 마치 교도소나 쓰레기 매립장 같은 님비 시설 취급을 받은 것이다.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곳에 특수학교 대신 백화점 같은 핌피 시설이 들어와 집값이 오르는 것만을 바랄 뿐, 지역 내 특수학교가 없어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 같이 통학해야 하는 특수 아동의 어려운 현실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때 핌피란 수익성이 있는 사업을 내 지방에 유치하겠다는 것으로 일종의 지역이기주의 현상의 하나이다. 심지어는 특수 아동이 ‘멀쩡한 우리 애’ 옆에서 노는 것이 싫다는 근본 없는 차별적 시선도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쩌면 장애인이 통합적인 환경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이유는 장애 때문이 아니라, 장애를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이기적이고 무심한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우리 대학만 생각해봐도, 교내 어떤 건물에도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캠퍼스 또한 경사 진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휠체어에 탄 사람이 스스로 캠퍼스를 자유롭게 오가기에는 어려움이 크다. 비장애인에게는 그저 오르기 힘든 언덕일 뿐이지만, 장애인에게는 이동조차 불가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내에 경사로나 무빙워크를 설치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소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투자하기에는 설치에 드는 비용이 꽤 크기 때문에.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그쪽이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수의 이기심 때문에 누군가는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불편한 현실이다.


지난 30일 롯데마트 잠실점에서는 매니저가 예비 장애인 안내견을 동반한 퍼피 워커에게 나가라며 고성을 친 사건이 있었다. 해당 사건이 SNS에 퍼지면서 사람들은 분노했고, 롯데마트는 공식 사과문을 게시했다. 그러나 마음이 씁쓸했던 것은 ‘과연 우리가 롯데마트의 행동에 분노의 목소리를 낼 만큼 떳떳한가?’의 문제였다. 이번 일은 그동안 장애인이나 안내견이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과 그로 인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우리는 장애인이나 안내견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었을까? 우리는 그동안 장애인들이 처한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고 개선을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가?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SNS를 통한 물 타기가 아니라, 실제 사회 환경의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장애는 상대적 개념이며, 비장애인 또한 당장 오늘이라도 장애를 갖게 될 수 있다. 그만큼 장애인이 처해 있는 사회 현실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이다. 나와 다르다는 생각,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 심지어 장애인의 문제로 인해 내가 불편해지는 것은 조금도 싫다는 이기심으로 인해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고 또 다시 상처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윤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