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메뉴
닫기
검색
 

여론

제 692 호 [책으로 세상 보기] 혐오의 시대, 각자의 사정과 이해에 대하여

  • 작성일 2021-03-07
  • 좋아요 Like 1
  • 조회수 3912
엄유진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인연을 맺는다그러다 보니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가족이기도 하고 연인이기도 하다그래서 가끔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도 해서 세상 참 좁다.”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도 하나의 소설이 되고 영화가 되지 않을까그 생각을 실현한 책이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이다. ‘피프티 피플5~10쪽 단위로 제목과는 조금 다르게 51명의 사람들의 51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각각 독립된 줄거리들을 서로 연결해 하나의 테마로 엮어 일관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옵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기존의 옵니버스 형식과는 달리 에피소드마다 주제가 조금씩 다르고 연결점이 좀 더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다예를 들면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 아내가 다음 에피소드의 주인공이고 이야기마다 주제가 다른 것이다


 이와 같은 형식을 취해서인지 주인공의 직업도 배경이 되는 이야기도 다채롭다수도권 근방의 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의사간호사레지던트연구원주부학생경비원사서카페 주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거미줄처럼 엮인다일어나는 사건도 다양하다갑자기 싱크홀에 빠지고 놀러 갔다가 뇌출혈로 응급실로 실려 가고 가습기 살균 사건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삶과 죽음은 한 끗 차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은근한 긴장감이 작품을 읽는 내내 느껴진다이런 긴장감에 대해 정세랑 작가는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가 단단하지 않고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학창 시절 삼풍백화점 근처에 살았는데 붕괴 당시 기억이 떠오르면서 발 밑이 꺼지는 느낌이었다라며 이번 작품은 그 당시 기억이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의 마지막 읽는 내내 조금씩 이름을 기억하고 앞 페이지를 뒤져가며 찾아보았던 이들이 한 극장에 모인다극장에서는 화재가 났고 각자 성별도사정도이름도 모두 다른 이들이 조금씩 힘을 보태 사상자 없이 극장을 탈출한다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어떤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고 내가 지나쳤던 사람이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을지는 누구도 모른다그래서인지 현재 우리 사회는 누군가에 대한 혐오가 표출하기도 하고 모니터 건너편의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거리낌 없이 적어내려 가기도 한다혐오의 시대 속이제는 혐오가 아니라 저 사람은 어떤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불의의 사고가 닥쳐도 조금씩 힘을 보테는 모습도 필요하지 않을까


김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