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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19 호 [사설] 챗GPT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

  • 작성일 20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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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4312
윤정원

챗GPT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에릭 슈밋 전 구글 CEO(최고경영자), 대니얼 허트로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슈워츠먼컴퓨팅대 초대 학장이 정기적으로 만나 AI를 주제로 사색하고 대화를 나눴다. 최근 출간된 'AI 이후의 세계'는 대전환이 확실시되는 AI 시대에 대한 이들의 통찰을 담은 책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데이터를 만드는 생성형 AI 챗GPT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대학가도 적극적인 활용방안 찾기에 나섰다. 챗GPT는 소설, 시, 음악, 논문 창작은 물론 프로그래밍 언어로 애플리케이션까지 개발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챗GPT가 단 30시간 만에 쓴 책과 전문가와 챗GPT가 함께 쓴 책이 국내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4월 19일 인하대 생명공학과 나노바이오공학개론 중간고사 시험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노트북을 꺼내 챗GPT를 사용하여 궁금한 내용을 질문했다. 챗GPT는 잠깐의 로딩 후 답변을 산출했다. 학생은 자신이 알던 지식을 더해 새롭게 창조한 답을 온라인으로 제출했다. 책을 찾아가며 답을 작성하는 과거의 '오픈북' 시험과는 다른 광경이었다. 다만 챗GPT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쓰는 건 금지됐다.


시험을 치른 학생들은 "그동안 답을 찾는 연습만 했는데 챗GPT를 쓰면서 질문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며 "챗GPT를 완벽히 믿기는 어려워 아이디어를 얻는 정도로 활용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챗GPT의 방대한 가능성에 몇몇 대학교들이 챗GPT를 교육 과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인천대는 학생들이 챗GPT로 부정행위를 하는 등 악용사례를 막기 위해 챗GPT 활용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연세대와 고려대도 챗GPT 학습 활용 방침을 만들고, 학생들에게 안내했다. 연세대는 챗GPT를 이용할 때 결과를 학생이 직접 검토하라는 지침도 함께 내렸다.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에서도 챗GPT 활용을 허용한 상황에서 학계의 빠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이제 어떻게 질문하느냐('how to ask')가 중요한 시대로 학생들의 역할은 AI를 활용하고 팩트를 체크하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정부, 행정부처, 기업도 직면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5월 8일 전국 행정기관 300곳에 '챗GPT 활용방법 및 주의사항 안내서'를 배포했다. 챗GPT의 문제점인 저작권, 개인정보 유출, 답변의 신뢰성, 윤리성, 편향성에 대해 상세히 제시했다. 생성형 AI의 한계로 거짓된 정보를 생성하는 문제가 있는 만큼 챗GPT가 내놓은 답변은 사실여부 검증과 확인을 반드시 거치도록 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통신 3사도 ‘챗GPT’에 대한 사내 사용지침을 마련했다. 통신 3사는 공통적으로 업무 효율 증대에 챗GPT를 사용할 것을 권장하면서, 보안에 유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KT는 챗GPT를 활용할 때 법규와 회사 규정을 준수하며 업무생산성을 높이는 목적으로 사용하고 개인적인 사용은 하지 말라고 공지했다. 회사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 업무, 기밀 등은 챗GPT에 입력을 금지했다. LG유플러스는 상품, 요금제, 멤버십 혜택 등 대외에 알려진 정보나 익명화된 데이터는 사용해도 되지만, 사내 정책, 회의록 등 회사 기밀정보, 연구정보, 고객 개인정보 등은 사용 금지했다. 또한 챗GPT를 통해 생성되는 콘텐츠가 저작권 혹은 개인정보를 포함 여부를 법적 검토 받도록 했다. SK텔레콤은 사내 업무용 챗GPT 전용 서비스를 개발해 배포했다.


하지만 보안 이유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챗GPT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자사 전용 챗GPT 도입에 속도를 내는 대신 사용제한 등의 기준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 입장에서는 초거대 AI에 대한 이해와 접목이 ‘게임 체인저(시장 판도를 바꾸는 기업)’의 요소지만 AI 거버넌스(경영체제)를 수립해 위험 가능성을 줄이는 검증 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AI 이후의 세계' 저자들은 향후 AI를 파트너 삼은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엄청난 격차가 날 것이라고 예상하며 15세기 인쇄 혁명 이후 인간은 가장 큰 문명의 전환점에 서 있다고 강조한다. 엄청난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대비도 필요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AI 기술에 대한 철학적 논의와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