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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26 호 [뮤지컬로 세상보기] 한 여성 예술가의 삶을 담다, <프리다> ​

  • 작성일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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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533
김상범

[뮤지컬로 세상보기] 한 여성 예술가의 삶을 담다, <프리다>


▲ 뮤지컬 <프리다>


  올해 8월부터 10월 15일까지, 약 두 달 반 동안 국내 뮤지컬 제작사인 ‘EMK’의 네 번째 창작 뮤지컬인 <프리다>가 다시 한번 막을 올렸다. 뮤지컬 <프리다>는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여성 화가인 ‘프리다 칼로’의 생을 녹여낸 작품으로, 일반적인 뮤지컬의 형식과는 다르게 ‘last night show’라는 테마를 갖고 토크 쇼의 리허설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극이 전개된다. 쇼 자체가 그녀의 인생이고, 리허설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오케스트라가 아닌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배우는 오직 여배우 4명이 한 무대에 오른다는 것 역시 다른 뮤지컬들과 차별화된 특징이다. 작년에 본 극이 초연으로 막을 올렸을 당시엔 큰 관심을 얻지 못했으나, 점차 회차가 거듭되고 입소문을 타가며 마지막 공연에 가까워질수록 회전문 관객(한 극을 여러 차례 보는 관객)들도 늘어나고 성황리에 막을 내렸던 만큼 올해 1년 만에 돌아온다는 소식에 많은 뮤지컬 팬이 기뻐했다.


  극의 주인공인 ‘프리다’ 외에 등장하는 세 명의 인물은 각각 ‘레플레하’, ‘데스티노’, ‘메모리아’이다. 우선 ‘레플레하’는 프리다와 함께 토크 쇼를 진행해 주는 인물로, 토크 쇼 중 프리다의 인생을 나타내는 데 있어선 프리다의 남편인 ‘디에고’의 역할도 같이 소화하는 감초 같은 역할이다. ‘데스티노’는 이름부터 운명이라는 영어단어인 데스티니와 비슷하듯, 프리다에게 여러 운명과 선택의 기회를 던져준다. 삶이 괴로운 그녀에게 차라리 죽는 게 더 편하지 않겠냐며 죽음을 제안하고 가혹하리만치 뼈아픈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메모리아'는 고통으로 가득했던 프리다의 삶에 희망을 준, 그녀가 본 ‘평행우주의 완벽한 또 다른 프리다'의 역할이다. 그녀가 좌절하거나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설 때면 나타나 프리다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메모리아의 역할이다. 2022년에는 ‘프리다’ 역에 최정원, 김소향 배우님이, ‘레플레하' 역에 전수미, 리사 배우님이, ‘데스티노’ 역에 정영아, 임정희 배우님이, ‘메모리아' 역에 최서연, 허혜진, 황우림 배우님이 캐스팅되어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올해는 작년에 함께한 김소향, 전수미, 리사, 정영아, 임정희, 최서연, 허혜진, 황우림 배우님뿐만 아니라 ‘프리다' 역에 알리, 김히어라 배우님, ‘레플레하'와 ‘데스티노', ‘메모리아' 역에 각각 스테파니, 이아름솔, 박시인 배우님이 합류하여 더 알차고 색다른 분위기의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 2023 뮤지컬 ‘프리다’ 캐스팅 (출처: EMK 뮤지컬컴퍼니)


  프리다의 생애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고통'이 아닐까? 프리다의 삶에는 세 번의 큰 고통이 있었다. 첫 번째 고통은 6세라는 어린 나이에 소아마비를 앓아 일찍이 다리의 성장이 멈춘 것이다. 또래 친구들이 곧 세상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어린 시절, 모두가 그녀를 ‘나무다리'라며 멀리했다. 프리다는 유난히 짧은 다리를 최대한 숨기기 위해 긴 부츠를 신기도 해보았지만, 사계절 내내 날씨가 후덥지근한 멕시코에서는 되레 이상해보일 뿐이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도 10대는 찾아왔고, 첫사랑도 생겼다. 그 당시의 여자아이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거나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프리다는 사진가셨던 아버지의 열린 사고방식으로 해볼 수 있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대학에 진학해 만난 첫사랑인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와 함께 미래를 꿈꾸던 어느 날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을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아리아스와 함께 귀가하던 도중, 타고 있던 버스에 큰 사고가 난 것이 그녀의 두 번째 큰 고통이다. 온몸의 뼈가 바스러지고 피범벅이 돼 의사조차도 장담할 수 없던 대수술이었음에도 그녀는 무언가 세상에 남아 큰 할 일이라도 남은 듯 목숨을 부지했다. 수술을 마치고 그녀가 자의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오른손’ 뿐이었다. 프리다의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그녀에게 천장에 거울을 달아주었고,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려보라며 제안해 주셨다. 아버지를 따라 종종 사진에 색을 입히는 작업만 해오던 그녀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큰 위기가 찾아왔음에도 그녀는 사고 후유증으로 차게 된 코르셋과 지게 된 목발을, 갑옷과 검처럼 살겠다며 당당하고 굳세게 ‘코르셋’이라는 넘버(뮤지컬의 노래를 칭하는 용어)를 부르며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 후로도 수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고, 꾸준히 그림을 그리던 그녀는 병원비를 부담하느라 집안 세간살이를 전부 파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 ‘그림'을 생업으로 삼아도 될지 고민이 돼 멕시코의 국민화가인 ‘디에고 리베라’를 찾아가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기로 한다. 


  디에고 리베라와 그녀는 많은 부분이 비슷했다. 넘버 중 하나인 ‘허밍버드'에서 묘사되듯 계급을 싫어하고 인간의 평등을 믿으며, 원주민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한다는 점이 특히나 그랬다. 디에고의 사상과 그림은 곧 프리다가 꾸던 꿈이기에 그녀에게 그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디에고 역시 프리다의 강인함과 열정에 매료돼 이성으로서 관심 두게 되었다. 당시 디에고는 비록 두 번이나 이혼을 한 남자였고, 프리다보다 21살이나 많았지만 머지않아 프리다와 결혼하게 된다. 그렇게 이제는 행복만 남은 줄 알았던 그녀의 삶은, 한 번의 유산으로 살짝 기울게 되고, 바람기가 다분했던 디에고가 프리다의 여동생을 사랑하게 되며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의 소외와 믿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이라는 세 번째 고통을 겪게 된다.


  이처럼 차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모두 겪은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여 만세!’를 외치는 인물이다. 극의 줄거리는 그저 프리다의 생애이지만, 고통에 직면해 때론 현실과 타협하거나 체념하고, 때론 극복하는 그녀의 다양한 모습을 여러 배우의 연기와 노래, 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뮤지컬을 봐야만 하는 이유이자, 많은 이들이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다. 우리는 ‘프리다'를 보며 자신을 투영해 볼 수도 있고, 그녀의 위대함에 경이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고통이 스토킹해도 두려워 말고 한 잔 가득 샴페인을 따르라!’는 가사가 담긴 그녀의 노래 ‘Lavida(인생)’는 관객 모두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뮤지컬이 다 그렇듯, ‘프리다' 삼연이 언제 돌아올지는 부지기수다. 다만, 많은 관객의 사랑으로 초연과 재연 사이의 공백이 짧았던 만큼, 삼연도 머지않아 돌아오지 않을까 짐작만 해볼 뿐이다. 멋진 장면들과 연기, 노래로 가득한 ‘프리다', 뮤지컬을 처음 보는 관객들이더라도 지루해하지 않고 볼 수 있는 115분의 짧은 러닝타임을 지닌 극이다. 이 기사로 결말이나 뮤지컬 자체가 궁금해진 학우들이 있다면, 언젠가 ‘프리다'가 돌아올 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러 한 번쯤 보러 가길 강력히 추천한다. 이 자체로 충분해 완벽한 극, 상대적으로 시간과 금액의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최고의 극을 꼽자면 단연 ‘프리다’ 뿐일 것이다.



이채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