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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31 호 [기자석] 식견을 넓히는 것

  • 작성일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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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97
김다엘

  내가 3학년이 되면서 느낀 점은 더 이상 마음 편히 놀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항상 뉴스와 SNS에선 취업난과 인플레이션 문제로 가득하고 나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3학년으로 산지 아직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음가짐이 생각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내 실력과 업계의 실력의 괴리가 조급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아직도 막막하게 느껴진다. 새롭게 시작한 아르바이트도 실수투성이었다. 이런 느낌의 불확실함은 입시 이후로 다시 느끼는 것 같다. 


  그래도 아예 멈춰있는 것은 아니라 한편으로 안심이 된다. 수업에선 착실히 무언가를 해나가고 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를 고민하기도 했다. 나를 바꾸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습관이 인생을 바꾼다. 이러한 말들은 지금까지 그저 그런 말들로만 느껴졌는데 지금 와서야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이치였다. 


  사실 난 아직도 나를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의식의 나를 무의식의 내가 인지하는 순간 다시 둘의 관계는 무의식이 의식이 되고 의식이 무의식이 된다. 그리고 그 끝은 제삼자의 관점으로 나를 보게 된다. 그러고 나면 내가 내 몸에 갇힌 무언가라는 생각이 든다. 영혼이라면 하나의 덩어리에서 왔을 것 같고 단순한 전기자극이라면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기계 같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내가 나를 인식하는 순간은 별로 반가운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적이 꽤 많았는데, 학원에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다가 갑자기 내가 삼인칭의 모습으로 연상되며 '내가 지금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며 갑자기 나는 무엇이고 왜 이 공간에서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며 나는 어디로 가기 때문에 이 생각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지를 아주 잠깐 머무르듯이 생각하다 이내 눈앞의 단어들을 보며 정신을 차리게 된다. 수업을 듣던 중에, 밥을 먹던 중에, 한창 TV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때, 친구들과 놀다가, 청소를 하다가, 길을 걷다가... 등등 이렇게 보면 나는 항상 내가 무엇인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솔직히 인간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내가 언젠가 이 고민의 답을 내릴 때,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꽤 궁금할 것 같다. 난 답을 내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엔 내가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점차 자라면서 사회성이 생기고 적당히 맞장구쳐주며 넘기는 능력이 생기며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모르는 게 많아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나름 추론을 해봤던 것이었다. 


  이제 앞으로 경험은 전보다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더 빠르게 쌓일 것이다. 그만큼 노력하는 것도 당연해지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도 당연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걱정하는 것은 전처럼 탐구자의 마음을 가지고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능숙해 질 수록 기대하는 것이 사라질 것이고, 그만큼 호기심도 사그라질 것 같기 때문이다. 고3 이후로 머릿속에서 영상을 재생하듯 연속적으로 무작위의 아이디어가 나오는 일은 없어졌다. 상상력이 끝난 기분이었다. 이 아이디어 연상 능력만 믿고 디자인과에 왔는데, 재능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그 뒤로 호기심도 사라졌다. 더 이상 무언가를 봐도 전처럼 영감이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재생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제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은 이해하기 쉬워졌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조금은 보이는 것 같았다. 어쩌면 디자이너로서 소통을 위해선 잘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쉽긴 하나 역시 계속 매달릴 수는 없기에 난 차라리 더 많은 자료를, 정보를 보고 배워서 생각의 경계를 넓히고자 했다. 


  디자인을 지금까지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 같다. 이제 평생 디자이너의 마음으로 살면 될 일이다. 항상 노는 나와 공부하는 나를 분리해서 봤지만 더 이상 무용인 것을 알았다. 이미 그런 식으로 몇 년을 살아온 사람과 잠깐 디자이너로 빙의하듯 살아가는 사람은 경쟁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 의식이라는 것은 책임감도 책임감이지만 앞으로 나를 어떻게 성장시킬지 정하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더 이상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로서 성장해 가려면 더욱 스스로를 타일러야 한다. 난 이런 마음가짐으로 평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김다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