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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사회

제 702 호 선거권의 역사

  • 작성일 2022-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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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5017
김지현

태초부터 선거권이 있었을까

  2022년 3월 9일,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다. 약 4,400만 명의 선거인 중에서 3,400만 명이 선거에 참여해 투표했으며, 하루 종일 모두의 이목을 주목시켰다. 4만 년이 넘는 현생인류의 역사에서 모든 사람이 선거권을 가진 시간은 매우 짧다. 그렇다면 나라의 통치자를 정하는 선거 제도는 언제부터 인류 사회에 자리 잡았을까?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선거의 역사를 함께 알아보자.


선거의 탄생

▲미국의 헌법 서명 장면


  1783년, 영국의 지배를 받던 북아메리카 대륙 13개 식민지가 독립 전쟁에서 승리하여 ‘미국’이라는 신생국이 탄생한다. 영국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미국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의 강대국과 독립국으로서 경쟁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고 각 주를 통치할 연방정부가 필요해졌다. 그 결과 각 주의 대표들이 모여 투표를 통해 조지 워싱턴을 통치자로 당선하니, 세계 최초 대통령의 탄생이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장면 


  1789년, 절대 군주제와 신분제에 의문을 품은 프랑스 시민들은 ‘시민혁명’을 통해 당시 폭정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다. 이들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인권선언을 발표하고 백성을 착취하던 왕과 귀족을 처형시켰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선거권이 인정되었던 것은 아니다. 19세기 초 프랑스는 0.7%의 부르주아만이, 영국은 5%의 귀족과 젠트리만이 선거권을 행사하였다. 1838년, 이에 분노한 영국 노동자들은 재산에 상관없이 선거권을 부여할 것을 요구한 민중운동을 펼쳤고 1867년, 영국 정부는 선거법을 개정하여 ‘보통선거’ 제도가 자리잡게 되었다.


  20세기 초, 민주주의가 여러 나라에 자리 잡았지만, 여성의 참정권은 여전히 인정되지 않았다. 이에 여성 운동가들은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요구하며 사회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회는 냉정했고 그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전쟁 중 남성들이 전쟁터로 끌려가면서 여성들이 후방에서 군수 생산이나 보급, 기타 행정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에 반대론자들은 더는 여성의 연약함을 반대의 이유로 들을 수 없었다. 더불어 여성참정권조직과 여성 운동가들의 노력은 여성참정권 논쟁의 불씨를 키웠다. 이후 여성의 사회참여와 발언권은 꾸준히 증가했고 세계대전을 겪은 많은 국가가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선거의 역사

▲6월 민주항쟁(출처: 6월 민주항쟁 공식 홈페이지 www.610.or.kr)


  세계가 변화하던 시기, 여전히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일제 치하 조선인이었다. 조선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당하였지만 어떠한 주권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러다 1945년,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항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은 끝을 맺고 대한민국의 광복이 이뤄지게 된다. 이후 3년 뒤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민주선거인 제헌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되었다. 이어 7월 20일 초대 대통령 선거가 제헌 국회에서 간접선거로 실시,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당선된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지지 세력이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자, 재임을 위해 발췌개헌을 시도,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 경상남도 마산에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항의 시위가 일어난다. 3월 15일, 제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부정행위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시위에 참여한 학생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시민들은 이에 분노하였다. 이로 인해 4월 19일 전국 각지에서 수십만 명이 참여한 4⦁19혁명이 벌어졌다. 결국, 부정선거로 당선된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게 된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 관심이 부족했던 시절, 대선 투표율은 점차 줄어들었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군부독재 당시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대통령 직접 선거제를 빼앗아 선거권을 완전히 보장하지 않았다. 그러다 1987년, 당시 국민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였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이 과정에서 박종철 학생과 이한열 학생이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고, 시민들은 다시 분노하였다. 이로 인해 6월, 민주화를 열망하며 민주 항쟁이 일어난다. 국민은 거리로 나가 시위를 벌였고 희생이 따랐지만, 결국 정부로부터 대통령 직접 선거제를 쟁취하였다.



희생으로 이뤄낸 선거권

  제20대 대통령 선거 이후 KBS에서 발표한 출구조사 추정치에 따르면 20대 이하 예측 투표율이 65.3%, 30대가 69.3%로 나타났다. 이는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20대 이하 투표율 76.2%, 30대 74.2%와 비교해 봤을 때, 큰 폭으로 투표율이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라를 이끌어갈 청년층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선거 참여율이 떨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발전 방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우리가 행사하는 선거권은 과거의 희생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민주화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억하며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일 것이다. 현생인류가 탄생하고 지난 4만 년의 시간 중 한반도에 모든 사람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시기는 불과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우리가 21세기에 태어난 것은 커다란 행운일 것이다. 우리 사회를 짊어지고 가야 할 대한민국 청년들이 정치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사회가 제대로 된 길로 들어서기 위해 소중한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신범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