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 [명사]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 작성자 이현민 (2017 입학)
- 작성일 2021-10-14
- 조회수 2976
‘안녕’이라는 인사가 조금은 더 가슴에 와 닿는 이 시기에 모두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안녕하세요. 교육학과 17학번 졸업생 이현민입니다. 교육학과 4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행사에 함께 감회를 나눌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와 교육학과’라는 주제는 필연적으로 제 지난 대학생활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상명에서의 3년 반은 결코 길지는 않았지만 제 인생의 어느 때보다 밀도 높게 보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얻은 수많은 경험 중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이 글을 공유할 선후배님들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가장 유의미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결과론적으로는 너무 뻔하고 재미없는 글이 되어버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할 가장 예쁜 꽃을 고르는 마음으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신중히 골라왔으니, 부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제 대학 생활은 사회가 규정하는 소위 ‘정상성’의 범주에서 조금 벗어나 시작되었습니다. 입학 당시 저는 하나의 학사학위와 약간의 직장생활 경험을 가진, 전 학년을 통틀어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흔히들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자리를 잡아가야 한다고 생각되는 때’에 띠동갑 동기들과 다시금 대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그리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몇 번을 다시 생각해보아도 저는 제가 가장 적절한 시기에 교육학과에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몇 년 더 빠르게 혹은 느리게 입학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교수님들과, 경험하지 못했을 프로그램들을 생각하면 제가 17년에 이곳에 온 것은 너무도 완벽한 타이밍이었습니다.
지난 여름, 학교를 졸업하며 교수님들께 드린 편지에 거의 공통적으로 적었던 내용이 있습니다. 공개된 자리에 쓰는 것이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저에게는 이 주제와 가장 잘 맞는 내용이기에 이곳에 공유해보려 합니다. 초등학교부터 전적대까지 16년의 학창시절, 저는 유독 좋은 스승을 만나는 운이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이라면 결코 교직에 있기 어려울, 반면교사로 삼을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의 첫 꿈이었던 교사의 꿈을 접어두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다시 올 때도 교수님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대가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학부 생활을 마친 지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는 운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저는 16년 치의 모든 운을 그러모아 이 곳에서 우리 교수님들을 만나는 데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고요.
물론 교수님들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언제나 엄청난 양의 과제와 보고서, 발표들을 선물하셨고, 때로는 그것들에 쏟아 부은 노력을 배반하는 학점으로 응답해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학기 저는 학점으로 치환할 수 없는 배움들을 얻어가곤 했습니다. 그 배움들은‘교육학’이라는 우리의 전공에 대한 학문적 지식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교육자로서 어떻게 그것들을 삶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실천의 문제였습니다. 때로는 ‘교육자는 이러해야 한다’는 명확한 명제로, 또 때로는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몸소 보여주시는 교수님들의 가르침 아래에서 저는 교육자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저의 교육관을 세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임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타과의 친구가 면접에서 자신의 교육관을 물어보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바로 대학 생활 전 과정에 걸쳐 끊임없이 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게 도와주신 교수님들을 떠올렸습니다. 이 고민의 과정은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교육과 관련된 일에 몸담을 우리에게 든든한 자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글을 부탁받을 때 ‘후배들에게 남기는 말’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며, 후배님들께 어떤 말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했습니다. 살다보면 가치 있는 것일수록 쉽게 얻을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깨닫곤 합니다. 저에게는 교육학과에서의 성장과정이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7학기 동안 총 162학점의 수업을 들었고, 그 중 73학점은 교육학과 전공수업이었습니다. 교원자격증 취득을 위한 필수수업이 아니더라도 제가 듣고 싶은 수업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듣다보니, 한 학기에 복수전공을 포함해서 전공수업만 23학점을 들은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사대 내 복수전공을 했기에 들어야 할 학점이 많았고 전공수업과 조기졸업에 대한 욕심이 있는데, 굳어지기 시작한 머리로 동기들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 물리적으로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유독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학생이었습니다. 특히 과방이 생긴 이후에는 주에 2,3일 정도는 학교에서 밤을 보내는 등 과방에 살림을 차리다시피 했는데, 당시 학과장님이셨던 이정민교수님께서는 제게 전할 말씀이 있으시면 전화 대신 바로 과방으로 오실 정도였습니다. 물론 후배님들께 저와 같이 극단적인 삶을 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조금은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었고, 그 상황에도 불구하고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빛나는 시절에 대학에서만 누릴 수 있는 생활을 충분히, 마음껏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대학에서만, 그것도 우리 상명대 교육학과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것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여러분을 괴롭고 힘들게 하는 수업을 많이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학기 내내 수강신청날의 자신을 원망하며 그날의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전 매학기 그 후회를 반복했거든요. 하지만 오롯이 감내해 낸 그 고통이 여러분의 내면에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산으로 남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답을 찾기 위해 애썼던 그 시간들은 여러분의 서류에 남는 졸업요건 이상의 가치가 될 것입니다. 물론 졸업과 교원자격증 취득은 중요한 일이고 심지어 우리 과에서는 관련 수업들이 알차고 의미있기까지 하지만, 비단 그 수업들로만 자신의 시간표를 한정짓지 마세요. 전공 필수 수업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수업이 여러분에게 주는 가치가 더 떨어진다는 뜻은 결코 아니니까요. 펑펑 울면서 마감 직전까지 보고서를 썼던 5학점 같은 2학점짜리 수업과, 은퇴를 앞두신 노교수님의 마지막 학기를 굳이 번거롭게 해드려 가며 개설해 달라 졸랐던 수업, 이미 전공 학점을 다 채운데다 가장 취약한 영역이라 성적에 불리할 것을 각오하면서도 신청했던 수업들은 모두 저에게 학점 이상의 귀중한 가치로 남아 있습니다. 교육학과에서 들은 25개의 전공 수업은 그 무엇 하나 쉽게 거저 들은 것이 없었지만, 저는 다시 돌아가도 같은 수업들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더 많은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할 것 같습니다.
긴 글을 장황하게 썼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사회의 속도에 맞추어 살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마세요. 저는 다시 대학을 오겠다고 결심한 그 날을, 제 20대 중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린 날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그 날의 결정 덕분에 저는 일곱 분의 교수님이 모두 우리 학과에 계실 때 입학해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고, 헤이스타 사업단이 있을 때 학과생활을 하며 인턴십을 통해 인생의 가치관이 뒤집히는 경험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속도가 나에게 최선인가는 나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사회가 말하는 속도를 쫓아가기 위해 조급해하기보다, 내가 가는 방향을 점검하는 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셨으면 합니다. 두 번째로 배우는 과정에서의 고통을 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더 이상 대학을 진리의 상아탑이라 부르지 않고, 심지어는 학위수여기관으로 전락해버렸다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육에 뜻을 지닌 우리들만큼은 교육이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임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듣는 수업들이 단지 학위를 받기 위한 과정만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어진 지면의 한계로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다 담지는 못했지만, 이 기회를 통해 학교에서 보낸 지난 시간들을 반추할 수 있어 무척 행복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 글이 교육학과에서 남은 시간을 보낼 방향을 다잡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빛나는, 앞으로도 빛날 매일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